보석이야기 유명한 다이아몬드
 
    제   목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다이아몬드 - 주빌리(Jubilee)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5-02-22  

현재까지 존재하는 다이아몬드들 중에서 컬리넌Ⅰ(530.20캐럿), 인컴퍼러블(407.48캐럿), 컬리넌Ⅱ(317.40캐럿), 센테너리(273.85캐럿)에 이어 전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무색 다이아몬드인 주빌리!!

주빌리란 원래 어떤 특정한 해의 기념 축제를 지칭하는 용어로, 실버 주빌리(Silver jubilee)라 하면 25주년 기념제를,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라 하면 50주년 기념제를, 다이아몬드 주빌리(diamond jubilee)라 하면 60주년 기념제를 뜻하는 용어이다 .

그러면 왜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다이아몬드에 "주빌리"라는 명칭이 붙어졌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895년 말경,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야거스폰테인 광산에서 당시의 중량 650.80캐럿의 면이 확실치않은 불규칙적인 8면체의 형태의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다이아몬드를 입수한 회사는 웰러·바이트 회사, 바나트·브라더즈 회사, 그리고 모젠탈·산즈 회사의 세회사로 구성된 다이아몬드 연합체인 신디게이트였다.

이 신디게이트는 그 유명한 엑셀시어(Excelsior)와 함께 이것을 매입하여 처음에 야거스폰테인에 있는 오렌지 자유국의 대통령인 프란시스·W·라이츠에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라이츠"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896년에 신디게이트는 이 원석을 암스테르담으로 보내, 메츠회사의 감독 지시하에 바렌즈라는 연마가에 의해 연마되었는데, 먼저 40캐럿 정도의 부분이 클리빙에 의해 벽개작업이 되었고, 이 40캐럿의 부분은 13.34캐럿의 멋진 상질의 페어 셰이프로연마되어 포르투갈의 돈·카를로스 Ⅰ세 부인의 선물용으로 팔렸다고 하나, 현재의 소재는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의 다이아몬드는 최종 중량 245.35캐럿의 쿠션형태로 연마되었다.

이것은 연마과정에서 이례적인 크기와 투명도를 가진 다이아몬드가 될 것이 명확하게 밝혀진 시기에 이것을 빅토리아 여왕에게 헌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다이아몬드는 소유자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연마된 이 다이아몬드가 "주빌리"라는 명칭을 갖게된 결정적 이유는 그 이듬해인 1897년이 바로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즉, 즉위 60주년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축전에 어울리도록 다이아몬드의 이름을 "주빌리"로 개명(改名)하게 된 것이다.

다이아몬드 세계에서는 이 축전에 즈음하여 "주빌리 커트"라고 하는 새로운 커트가 도입된 것으로도 기록에 남아있는데, 로즈 커트와 브릴리언트 커트의 양자의 특징을 동시에 나타내는 이 새로운 연마형태는 테이블면과 함께 8면의 스타 패싯을 가지며, 총 면수는 88면으로 요즘에는 별로 볼수 없는 연마형태이다.

1900년에 신디케이트는 파리 박람회에 "주빌리"를 출품하여 인기를 독차지 했었는데 당시의 평가액은 700만 프랑(약21억원)이었다고 한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인도의 철강산업의 기초를 다진 기업가로 자선 사업가였던 드라부지·다다경이 이 다이아몬드를 매입했었는데 다다경은 1932년에 죽고 3년후 상속인들이 매각을 위해 주빌리를 카르티에로 보냈으나 카르티에는 그해 12월에 이 다이아몬드를 역사적인 다이아몬드의 전시물에 추가 선정하였고 1937년에 주빌리는 파리의 기업가로서 모든 예술의 후원자였던 폴·와이라에게 팔려서 그가 현재 이 다이아몬드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이 다이아몬드는 6줄기의 광선을 가진 별(星)또는 도안화시킨 거북이를 연상시키는 바게트 다이아몬드를 많이 이용한 브로치로 세팅되어, 1960년에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행해진 전시회, 또한 동년 12월에 제네바에서 개최된 전시회를 포함하여 몇회의 전시회에 주빌리를 대여 전시하였고, 1966년에 주빌리는 남아프리카로 돌아와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드·비어스·다이아몬드·전시회"의 인기품목이 되었다.